“계기요?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쟁 기억하시죠? 나라 전체가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는 걸 보다가….” “자…잠깐. 그건 핵심이 아니지! 그러니까 인터넷 게시판이 규칙 없이 방치된 상태로 흘러가고, 스팸 덧글이 도배되고 하는 걸 보고 안타까워….” “아 그게, 게임 요소를 넣으면 재미있을 거 같기도 하고….”
이 둘, 뭐하는 걸까. 인터뷰 도중 서로 투닥거리는가 싶더니, 아예 방문객은 안중에 없이 둘이 알아서 인터뷰를 진행한다. 얘기가 뜬금없이 높은음자리로 튀어오르는가 하면 바닥을 긁어대기 일쑤다. 숫제 질문 하나를 놓고 둘이 맞짱 토론을 벌일 기세다. 그런데도 가만 듣고 있노라면 할 얘기는 다 하는군, 거 참.
이 럭비공같은 두 청년들은 픽플커뮤니케이션즈 김지웅(24) 사장과 윤영상(25) 부사장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왜 이들이 ‘티워‘를 내놓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만도 하다. 두 청년만큼 티워도 점잖음과 발랄함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 아닌가.
찬반 미리 정하고 시간·발언 제한 둬 토론 효율성 유지
티워는 토론을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다. 오로지 ‘토론’을 표방하고 나선 민간 서비스는 국내에서 사실상 티워가 유일하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찾긴 쉽지 않을 정도다. 방문객의 목적도 단 하나다. 토론이다. 토론의, 토론에 의한, 토론을 위한 사이트다.
김지웅 사장과 윤영상 부사장의 ‘핑퐁 대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쟁을 보면서 생각했죠. 다수인 한쪽과 소수인 반대쪽이 온라인에서 싸우다보니, 토론보다는 감정싸움만 커지는구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도 감정적인 글이나 스팸 덧글 등에 가려 묻혀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게시판 얘기들이 토론처럼 의미 있고 정돈되도록 도와줄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서비스명 ‘티워’는 ‘토크워’(Talk War)의 줄임말이다. 2007년 토론 아이콘인 ‘디워’를 연상케 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픽플커뮤니케이션즈가 1년여 준비 끝에 지난 8월 첫선을 보였다.
이름만 놓고 보면 먹물 뚝뚝 흐르는 근엄한 토론 마당이나 이빨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전쟁터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잘못 짚으셨다. 티워를 관통한 여러 주제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산된다.
티워는 토론사이트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게임사이트인가 착각할 정도다. 일단 빠져들면 다양한 재밋거리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법도 하다. 토론 서비스 곳곳에 재미와 유머, 전략과 흥미가 녹아 있다. ‘토론은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은 티워에선 통하지 않는다.
“시사, 인물, 역사같은 딱딱한 주제도 있지만 유머나 연예같은 카테고리도 인기가 높아요. 참가자들이 올리는 토론 주제를 보면 정말 재미있는 게 많거든요. 뭐 ‘콜라가 맛있나, 사이다가 맛있나’를 놓고 양쪽이 토론을 벌이는 식이죠. 하하.”
말싸움을 해야 하는 곳이니만큼, 티워는 전쟁을 연상케 하는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이를테면 티워에서 말싸움을 벌이는 사람은 ‘총알’을 장전해야 한다. 토론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이 속할 군대도 선택해야 한다. 똑같은 수의 군사를 두고 양쪽이 말싸움을 벌이는 것이 티워의 기본 형태다.
주요 아이템들은 재미 요소를 더하면서 동시에 객관성과 토론 효율성을 유지하는 주된 안전핀이다. 총알이 떨어지면 재충전할 때까지 발언권이 제한된다. 전쟁 기간과 개별 발언 시간도 제한돼 있다. 지리멸렬하게 논쟁이 이어지거나,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쏟아내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올바른 토론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어요. 찬반이 나뉘어야 하고, 발언권이 제한돼야 하고, 시간도 제한돼야 하는데요. 티워는 처음부터 진영을 선택해야 하므로 찬반 입장을 확실히 갖고 시작합니다. 또 전쟁 기한을 두고, 기간이 끝나면 토론이 종료돼요. 총알이 떨어지면 발언권도 제한돼죠.” 이같은 게임 요소는 토론 못지 않게 티워를 규정하는 주요 특성이다. 오히려 김지웅 사장은 “티워는 게임처럼 재미 있는 사이트인데, 너무 토론사이트 기능만 부각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말할 정도다.
욕도 당당히 한다! 재미있잖아~♬
재미 요소를 부각하다보면 자칫 ‘토론’이란 본연의 기능이 묻혀버리지는 않을까. “그 문제를 놓고 1년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선 양쪽 참가 인원을 똑같이 둬서, 어느 정도 공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했죠. 글을 쓸 때도 주장, 논거, 근거 등을 마우스로 드래그해 남기도록 하고 댓글에도 오류를 지적하는 메뉴를 넣었어요. 논리공격을 통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흑백논리의 오류 등을 지적하도록 했고요.”
티워는 아예 ‘인신공격’ 메뉴를 따로 두고 있다. 공식적으로 상대에게 ‘막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토론을 하다보면 상대를 쏘이붙이고 싶을 때도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잖아요. 뭐 그렇다고, 심한 욕은 아니고요. ‘야이, 당근같은 놈아!’ 하는 식이죠. 재미있잖아요!”
티워에선 사람들의 지지를 적게 얻는 글은 자동으로 죽는다. 덜 중요하거나 비논리적인 글은 희석되는 대신, 지지를 많이 받는 글은 진하게 표시된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글이 살아남는 것이다. 사회자가 따로 없는 대신, 다수의 ‘중립군’을 뒀다. 찬반 양쪽이 30명씩 나눠 싸운다면 100~200명의 중립군이 이를 지켜보며 자연스레 중재하는 식이다. ‘집단지성 사회자’인 셈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겪었다. “처음부터 밀리터리 분위기를 팍팍 풍겼어요. 사이트 디자인도 밀리터리룩으로 덮어씌웠고, 회원들마다 ‘계급’도 달아줬어요. 그랬더니 남성 이용자가 80%로 확 늘어나는 거에요. 상대적으로 여성 회원들은 이용하기 어렵다며 빠져나가고요. 어이쿠, 이건 아니다 싶었죠. 부랴부랴 계급을 없애고 바탕색도 하얗게 바꾸고 아이콘들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걸로 바꿨죠, 하하.”
유명 연예인 자살 사건으로 악플과 괴소문 유포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참에 작정하고 메스를 들이대려는 움직임이다. 자율성과 규제, 어느 한 쪽도 포기할 수 없지만 온전히 융합하지 못하는 두 가치가 극한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예 ‘민주주의2.0‘이란 공론장을 열고 온라인 공론화 실험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합리적인 토론과 온라인 공론 모델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뜨겁다.
“서비스 성격 탓인지, 보는 이들마다 티워를 다음 ‘아고라’와 많이들 비교하는데요. 엄연히 달라요.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일종의 게시판형 ‘광장’인데, 저희는 게임 요소를 가미한 토론사이트입니다. 아고라는 경쟁 상대도, 목표도 아니에요. 티워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토론문화가 정착되길 바라는 서비스일 뿐이죠.”
화려한 수상경력 자랑하는 괴짜 발명가
서비스도 주인을 닮아가는 것일까. 독특하고 깜찍한 티워 서비스만큼이나 김지웅 사장의 이력과 생각도 통통 튄다. 김지웅 사장은 전국학생발명대회 대상 수상자 출신이다. 학창시절부터 이것저것 연구하고 발명하는 걸 좋아했더랬다. 늘 수첩을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적었다. 이렇게 쌓인 아이디어만 수천 개, 수첩만도 수십 개다.
“창문에 치는 버티컬 아시죠? 줄이 두 개 있잖아요? 밑에 손잡이가 달린 줄은 버티컬을 접었다 펼치는 줄, 구슬로 된 줄은 버티컬 방향을 조절하는 거고. 그런데 줄 두 개가 가까이 있다보니 엉키고 걸리적거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구슬로 된 줄에도 손잡이를 달고, 두 손잡이를 붙여버리는 아이디어를 냈죠. 그걸로 부총리상 먹었어요.”
또 있다. “대개 보면 CD를 놓을 때, 기록면이 긁힐까 봐 아랫면을 위로 보이게 놓잖아요. 그런데 먼지가 앉아 고장도 잘 나고, CD 자체도 납작해 집어들기 어렵죠. 라벨이 안 보여 어떤 CD인지 알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아랫쪽 기록면 끝 테두리를 따라 삼발이 형태로 ‘발’을 달아주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러면 CD를 윗면 라벨이 보이도록 똑바로 놓아도 기록면이 닿지 않아 훼손되지도 않고 CD도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데다 집기도 쉬워요. CD를 읽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고요.” 이건 과기부총리상을 받았단다.
김지웅 사장의 독창성과 기발함은 티워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지난해 봄 세계 3대 벤처대회로 불리는 ‘뉴 벤처 챔피언십’에서 픽플커뮤니케이션즈는 티워를 앞세워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혁신상’을 포함해 2개 상을 수상했다. 티워의 재기발랄함을 세계가 인정해준 것이다.
이쯤 되면 외부 ‘입질’도 적잖았을 거라 짐작할 만도 하다. “사실 기획 단계부터 돈을 대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투자 제의도 여러차례 있었어요. 외국 벤처캐피털로부터도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두 거절했죠. 먼저 제대로 된 토론서비스를 완성하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투자 유치는 그 다음이죠.”
현재는 소프트뱅크미디어랩의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리트머스2′를 통해 웹호스팅과 컨설팅 등을 지원받는 정도다. KTH로부터는 사무실과 호스팅, 약간의 운영자금을 지원받고, 파란을 통해 티워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계획이요? 게시판을 가진 여러 사이트에 티워 토론게시판을 갖다붙이고 싶어요. 문의도 많이 들어오거든요. 포털이든 전문 서비스든, 게시판이 붙는 곳엔 제대로 된 토론 기능을 붙이고 싶은 거죠.” “참, 우리 모바일 서비스도 올해 안에 시작할 거에요. ‘당신의 댓글이 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란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열 받아서 즉석에서 문자로 댓글에 댓글을 남기지 않고 배기겠어요? 하하.” “아니, 디씨갤러리에 티워가 붙는다고 생각해보세요. 훨씬 토론도 가지런해질 테고, 또….”
허걱. 젊은이들, 티워로 가서 마저 토론해! (-.-)a
[이희욱 기자]200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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